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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줍는 어르신과의 공존, 무관심을 넘은 공공의 책임

by 하얀바람79 2025. 5. 4.

 

도시 곳곳에서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수집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들의 활동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재활용 구조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교통안전 문제, 시민과의 갈등, 제도 밖 노동의 한계 등 다양한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본 글에서는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현실을 짚고, 이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공동체적 해법을 모색한다.

폐지 줍는 어르신들, 우리 사회가 외면해 온 노동의 현장

이른 아침, 도시의 도로 한편에서 리어카를 끄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신문지, 박스, 책자 등 재활용 가능한 폐지를 주워 정리하고, 고물상에 팔아 하루 몇 천 원에서 많아야 만 원 남짓을 벌어들이는 일은 고령층의 생계를 지탱하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노동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분명 엇갈려 있다. 일부는 이를 자립적이고 근면한 생계 활동으로 보지만, 또 다른 일부는 도시 미관 훼손, 교통안전 문제, 쓰레기 무단투기 등의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시선은 단지 시민들의 반응에서 끝나지 않는다. 여러 지자체에서는 리어카의 도로 운행을 제한하거나, 폐지를 일정 무게 이상 모아야 고물상에서 매입이 가능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이들의 활동을 사실상 제약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단순히 거리 정비나 환경 미화의 차원으로만 접근한다면, 그것은 눈앞의 불편함만 해소할 뿐, 근본적인 사회적 배제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 한 어르신은 “하루 종일 다녀야 박스 몇 킬로그램이고, 무거워도 팔 수 있는 데가 없으면 그냥 다시 버린다”라고 토로했다. 즉, 그들의 노동은 단지 생계의 문제를 넘어, 제도 밖에 놓인 복지의 사각지대라는 점을 드러낸다. 더불어 이러한 활동은 도시 내 재활용 체계에서 실제로 일정 부분 역할을 하고 있으며, 대체 인력이 투입되지 않는 이상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제도 바깥에서 반복되는 생계, 그리고 우리가 외면한 진실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의 대부분은 기초연금 수급자이거나, 그조차 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다. 65세 이상의 고령자 중 상당수가 실제로 취업은 불가능하지만 생계는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의 상대적 빈곤율은 약 40%에 달했으며, 이 수치는 OECD 국가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폐지 수거는 이들에게 유일한 ‘현금화 가능한 노동’이자 ‘사회적 연결’ 수단이기도 하다. 필자가 인터뷰한 76세의 한 어르신은 “아무도 나한테 말 안 걸지만, 이 일은 나가면 누구든 지나가고, 말 한마디라도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감수해야 할 것은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교통안전"이다. 인도가 아닌 차도에서 리어카를 끌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사고 위험이 크고, 특히 야간에는 반사판 없이 이동해 차량과의 충돌 우려가 높다. 실제로 해마다 폐지 수거 중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어르신들의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또한, 고물상과의 단가 불균형도 문제다. 수거한 폐지를 고물상에 가져가도 1kg당 50~70원에 불과한 가격에 팔 수 있으며, 최근에는 고물 가격 하락으로 아예 매입을 거부당하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폐지 수거는 ‘노동’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비가시적 노동이며, 보호받지 못하는 비공식 경제의 영역에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구조적으로 고착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지자체에서는 이들을 위한 별도 일자리나 지원 프로그램 없이, 단속 위주의 접근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 은폐에 가깝다.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그림자처럼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들의 활동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정책적 관점 전환이다.

 

같은 도시, 다른 하루… 공존을 위한 선택은 지금 필요합니다

폐지 줍는 어르신들은 우리가 매일 걷는 거리, 지나는 골목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이웃이다. 이들의 존재를 ‘불편함’으로만 인식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이자 도시 환경의 비공식 관리자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들의 삶을 개인의 문제, 복지의 문제로 한정해왔다. 하지만 이 문제는 공공의 문제이며, 더 나아가 ‘공존’이라는 도시의 기본 조건과 맞닿아 있다. 공존을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제도적으로 안전하고 존엄한 노동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수거 시 야간 조명 반사장치 제공, 지정 수거구역 확보 등 안전 대책 마련이 우선되어야 한다.

둘째, 고물상과의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일정 기준 이하의 폐지도 최소 단가로 매입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셋째, 지방자치단체는 폐지 수거 어르신을 위한 일자리 전환 교육이나 공공 인프라 관리 역할 등을 연계해 사회적 역할을 재설정할 수 있다. 넷째, 시민 인식 개선 캠페인을 통해 이들에 대한 시선이 차별이 아닌 이해와 연대로 바뀌도록 유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책 결정 단계에서 실제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공청회나 주민 토론회를 통한 민관 협치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어르신들이 리어카를 끌고 이동하는 그 길 위에는 단지 종이박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놓친 복지의 흔적, 그리고 인간다운 삶을 향한 최소한의 노력도 함께 실려 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그들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길을 넓히는 일이다.

폐지줍는 어른신과의 공존에 대한 사진